지금의 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지대(遲遲臺)에는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세워져 있다. 지지대비의 건립 과정을 보면 정조가 승하한 이후 순조가 즉위했던 해인 1800년(순조 즉위년) 11월 13일에 화성어사(華城御史) 신현(申絢, 1764~1827)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지대에 사적을 기록한 지지대비를 세우게 했다.
지지대비 |
이후 1807년(순조 7) 8월 6일에 순조는 지지대비의 비문을 지어 올릴 것을 하교했다. 비문은 서영보(徐榮輔, 1759~1816)가 지었으며, 그의 시문집인 <죽석관유집>에 상세히 남아 있다. 지지대비가 세워진 건 비신에 새겨진 ‘숭정기원후일백팔십년정묘십이월일립(崇禎紀元後一百八十年丁卯十二月日立)’의 명문을 통해 1807년(순조 7) 12월로 확인된다. 또한, <순조실록>에는 1808년(순조 8) 2월 28일에 비각 건립과 관련된 감동관(監董官)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한 기록이 남아 있다.
■ 지지대(遲遲臺) 명칭의 유래
지지대(遲遲臺)라는 명칭은 정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유래와 관련해 정조의 애끓는 효심을 엿볼 수 있는데, 다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어가가 사근현(沙斤峴)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잠시 쉴 때에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본래 가슴이 막히는 병이 있어 궁궐을 나올 때에 꽤 고통스러웠었는데, 이제 다행히도 배알하는 예를 마치고 나니 사모하는 마음이 다소 풀리어 가슴 막히는 증세도 따라서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게 되었으니 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이 지역은 바로 수원의 경계이다. 말에서 내려 머무르며 경들을 불러 보는 것은 대저 나의 행차를 지연시키려는 뜻이다.”
하고, 인하여 그 지역을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정조실록> 1792년(정조 16) 1월 26일 중
또한, 지지대는 정조 능행길의 주요 장소로, <화성지>와 <수원군읍지>의 필로 관련 기록을 보면 지지현(遲遲峴)을 시작으로, 현륭원(顯隆園)에 이르기까지 18개의 표석과 11개의 장승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지대비가 있는 계단에 지:대(遲:臺)가 새겨져 있는데, 다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지지대비와 계단. 좌측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
계단에 첨입된 지:대(遲:臺) |
“<중략>... 매번 현륭원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륵현에 당도할 때면 고삐를 멈추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서성이곤 하였다. 이번 행차에서 미륵현 위에 둥그런 자리가 만들어져 대(臺)와 같이 보이는 것을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하니, 이후 행행하는 노정에는 ‘미륵현’ 아래에다 ‘지지대’라는 세 글자를 첨가해 넣도록 본부와 정리소(整理所)로 하여금 잘 알게 하고, 경 또한 이 뜻을 잘 알라.” <후략>...
<일성록> 1795년(정조 19) 윤2월 16일 중
■ <화성전도> 속 지지대의 변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화성전도>는 6폭과 12폭 병풍이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화성전도>는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 일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두 병풍이 거의 같아 보이면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정조의 영전(影殿)으로 어진을 봉안했던 화령전(華寧殿)과 지지대비(遲遲臺碑)의 존재 여부다.
<화성전도> 6폭 병풍에 그려진 지지대. 둥그런 형태의 대(臺) 우측으로 표석과 장승이 그려져 있다.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
<화성전도> 12폭 병풍에 그려진 지지대. 비각이 있고, 옆으로 장승이 그려져 있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
가령, 6폭 병풍에는 화령전이 없고, 지지대에는 <일성록>에 표현된 둥그런 자리 형태의 대(臺)가 그려져 있다. 반면, 12폭 병풍에는 화령전과 지지대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두 병풍이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령전의 경우 정조 사후 1801년(순조 1)에 만들어졌고, 지지대비가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것을 고려하면 6폭 병풍은 정조의 재위 기간 중, 12폭 병풍은 정조 사후의 그림임을 보여준다.
지지현 표석. 사진 제공: 수원화성박물관 |
이러한 <화성전도>에 그려진 지지대에는 표석과 장승이 그려져 있는데, 6폭 병풍에는 지지현 표석과 장승, 12폭 병풍에는 장승이 그려져 있다. 지난 2022년 4월 3일에 발견되어 현재 수원화성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진 지지현 표석 역시 지지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때문에 지지대와 정조 능행길의 역사성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옛 위치로 추정되는 장소에 지지현 표석의 복제품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비 주변 풍경 |
노거수 아래에서 확인되는 석재. 지지대비 이전 둥그런 형태의 대(臺)와 관련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
한편, <화성전도> 6폭 병풍에서 확인되는 둥그런 형태의 대(臺)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위치로 볼 때 현 지지대비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지대비 인근에서 관련 석재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 있어 추후 발굴 조사를 통해 그 존재와 형태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