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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다정이는 당나귀다. 한강이, 두강이, 세강이 등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오리, 700여 수의 토종닭, 소나무와 참나무, 여뀌, 쇠비름, 망초 등 수백 수천의 나무와 잡초들과 함께 사랑하는 부인과 알콩달콩 자연과 더불어 공생공락하는 부부가 있다고 해서 문자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여주터미널에서 다시 택시 타고 ‘바보 숲’으로 가자고 하니 기사는 ‘홍일선 시인 집’을 잘 안다며 들판을 지나 산기슭에 나를 내려놓는다. 솟대와 돌무더기 그리고 시를 써서 매만 헝겊 조각들이 펄럭거리는 여주시 점동면 도리1길 170-72번지 ‘바보숲명상농원’농원 앞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의 접경지역 여강 산기슭에 너와집을 짓고 후배 아동문학가가 귀농 다음 해인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 위기에 처한 닭 다섯 마리를 선물했다.
말이 좋아 귀농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안팎을 정리해도 끝이 없는 막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도망간 줄로만 알았던 닭들이 노란 병아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 낳고 기르면서 고통을 이겨낸 닭들에게 부끄럽고 눈물 났다고 한다. 그 후로 계속 알을 품어 열, 스물, 서른, 백여 마리로 수를 늘어났다.
자연의 섭리는 이처럼 누가 가르치지도 시키지도 않아도 스스로 돌아간다는 것도 깨우쳤다. 집 주변에서 토종닭들은 땅속의 벌레와 풀씨들을 먹고 번식을 계속했다. 이후로 그는 닭을 '닭님'이라고 부르고 알을 꺼낼 때마다 '닭님, 고맙습니다'라며 인사한다. 산속에서 내려오는 삵과 들짐승으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강아지를 데려와 특별경호 임무도 맡겼다.
홍 시인은 “오덕(五德)을 잘 섬기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요. 그럼 오덕이 무엇인가. 흙님·강님·숲님·해님·곡식님, 이 다섯에요. 우리는 이 오덕에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아버지가 진 빚은 자식이 갚아야 하듯이 자연에 진 빚은 우리가 갚아야 합니다.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이 오덕을 섬기지 않는 시나 예술은 모두 가짜”라고 한다.
그는 2013년에 여주시 강소농 농가부문 대상을 받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강소농 100인’에 선정되었다. ‘강소농’이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소농의 약점을 강점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실천 프로젝트 사업이다.
키우는 토종닭이 낳은 달걀은 하나가 시중의 달걀값 10배이지만 비싼 게 아니다. 황토, 부엽토, 깻묵, 쌀겨, 옥수수 등 13가지 재료를 배합해 직접 제조한 친환경 특급사료와 부엽토를 헤집어 지렁이와 굼벵이 등 벌레를 먹고 낳은 친환경 달걀이다. 토종닭을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옛 전통방식인 친환경 농법으로 키우고 있다. 계사 내부에 들어가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모실 수 있는 닭은 700여 마리지만 지금의 수익에 감사하고 10배의 행복의 가치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요청하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의 특강과 상담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 찾아와 상담받고 있었다.
흙의 착한 마음을 믿는 이여
기다림이라는 길이라는 님
아직도 모시고 있다면
먼 길 그냥 더 가시게나
언제이고 어머니 뵙거든
흙에게 강에게 숲에게
나무호미 하나 깎아드리고
무릎 꿇어 삼배 올리시게나
-홍일선 시 「흙의 경전」 중에서
홍 시인은 8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과 한국작가회의 이사, 4대강 살리기 문화예술인 공동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농토의 역사』, 『흙의 경전』 등의 시집을 펴낸 중견 시인이다.
한편, 홍 시인은 오는 11월 14일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옆집예술 - 옆집에 사는 예술가」 홍일선 시인 편이 ‘바보숲 명상농원’에서 열린다.
이원규 기자 one-q-leeQ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