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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태실 - 포천 송우리 태봉과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

기사승인 2020.05.25  06: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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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산 28번지에는 태봉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상에는 태실과 관련한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포천 송우리 태봉(포천시 향토유적 제18호)이다. 정상에는 태실의 태함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전승의 형태로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인 정희왕녀이나, 왕자의 태실로 전해지고 있다. 포천 송우리 태봉이 누구의 태실인지는 태지석이 출토되지 않았기에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포천 송우리 태봉. 산의 정상에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인 정희왕녀 혹은 왕자의 태실로 전해지는 태함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태함의 외형을 보면 기존에 보던 조선 왕실의 태함 형태와는 차이를 보이기에 고려시대의 태함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해당 전승을 통해 고려시대에도 태실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또한 태봉산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인근의 도로명이나 식당, 아파트의 이름 등에서 태봉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지명 속에 담긴 역사의 한 장면이라 할 만하다.

■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의 태함이 회암사지 박물관에 있는 이유는?

한편 포천 송우리 태봉에서 가까운 거리에 양주 회암사지가 있는데, 회암사지 박물관의 야외를 걷다보면 눈에 띄는 석물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태함이다. 회암사지의 초석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태함은 관련 안내문이 없기에 단순히 태함만 봐서는 어디에서 출토된 것인지, 누구의 태함인지 알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해당 태함의 출처를 조사하던 중 양주 황방리 태봉산에서 옮겨 왔다는 사실과 태지석의 명문을 통해 왕녀 승복의 태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87-1번지에 있던 태봉산 정상에 있었다. 대동종약원에서 발간한 <조선의 태실>을 보면 비록 훼손되기는 했지만 태실비의 상단 부분과 태함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양주 황방리에 있던 태봉산은 현재 공사로 인해 훼손이 되어 원형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다. 마치 일전에 본지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김포 조강리 태실과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포 조강리 태실이 있던 태봉산. 지금은 훼손된 채 인순공주의 태실비와 태함은 인근으로 옮겨졌다.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의 야외에 전시된 석물. 자세히 보면 태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습된 태함은 회암사지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안타깝게도 태함의 개석과 태실비는 유실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양주시청과 양주문화원 등에 해당 석물의 행방에 대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회암사지 박물관으로 옮겨진 태함 이외에는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유실된 아기비의 상단 부분은 <조선의 태실>과 논문 등에 언급되고 있는데, 우선 태실비의 앞면에는 ‘왕녀□복아(王女□福阿)’이, 뒷면에는 ‘홍치오년칠월(弘治五年七月)’이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곳이 왕녀 승복의 태실이라는 사실은 태지석의 출토로 확인이 되었는데, 태지석에는 ‘황명홍치삼년삼월초육일사시생왕녀승복아지씨태/홍치오년칠월십칠일유시장(皇明弘治三年三月初六日巳時生王女承福阿只氏胎/弘治五年七月十七日酉時藏)’이 새겨져 있다. 즉 태지석을 통해 왕녀 승복의 출생일이 홍치 3년(=1490년, 성종 21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왕녀 승복이 성종과 귀인 정씨 소생의 정혜옹주(1490~1507)일 가능성이 있다.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의 태함
태함의 내부. 가운데 배수를 위한 인위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

성종과 귀인 정씨는 안양군(1480~1505)과 봉안군(1482~1505), 정혜옹주 등 2남 1녀를 두었다. 그런데 성종이 승하한 뒤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해 귀인 정씨의 책임을 묻게 되고, 그 결과 귀인 정씨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연산군일기>를 보면 밤에 연산군은 안양군과 봉안군을 끌고 와서 몽둥이로 귀인 정씨를 때리게 했다. 이때 안양군은 어두워 어머니인지 모르고 때린데 반해 봉안군은 어머니인 줄 알았기에 머뭇거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 여파로 안양군은 제천, 봉안군은 이천, 정혜옹주는 백천으로 안치되었다. 이때 정혜옹주는 옹주의 직첩을 박탈당한 채 그저 남편인 한기의 처로 불렸으며, 이후 중종반정(1506) 이듬해인 1507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편 정혜옹주의 남편은 형조판서 한형윤의 아들인 한기로, 청평위(淸平尉)의 위호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54-2번지에 정혜옹주와 한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정혜옹주의 친 오빠인 안양군의 태실지.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 산 5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은 비지정 문화재가 어떻게 훼손이 되고, 유실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경기도 관내에는 관리되지 않고 있는 태실이 많이 있고, 이 중 상당수의 태실이 비지정 문화재로 관심 밖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태실이 사유지에 있을 경우 문화재 지정이나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 역시 현실적인 애로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대로 태실을 방치할 경우 양주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이나 김포 조강리 태실의 사례처럼 태실지가 훼손되고, 태실 관련 석물이 유실되는 사례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기도 관내에 남아 있는 태실의 보존과 관리 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다행히 2020년 1월 경기도에서 관내의 태실에 대한 보존과 관리에 신경을 쓰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향후 경기도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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