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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있던 성종 태실의 석물이 왜 창경궁에 있나요?

기사승인 2021.07.21  17: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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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작년 홍천과 춘천을 다녀오는 길에 국립춘천박물관을 들렀다. 한참을 박물관의 유물을 보다가 야외에 전시된 석조물 코너에서 눈에 익은 유물이 보여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태함이었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태함이라고만 적혀있을 뿐 어느 시기에 조성된 것인지, 어디에서 출토된 것인지 등 자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당시에는 “강원도 쪽 어디에서 출토된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국립춘천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양평 대흥리 태실의 태함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나중에 <조선왕실의 태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취합하다가 눈에 익은 사진을 봤는데, 바로 양평 대흥리 태실의 태함이었다. 그런데 해당 태함이 내가 춘천박물관의 야외에서 본 태함과 같았다. 혹시나 해서 최근 발간된 보고서를 확인한 뒤에야 춘천박물관에서 본 태함이 양평 대흥리 태실의 태함인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째서 양평에서 출토된 태함이 관련도 없는 춘천박물관의 야외에 있는 것일까?

■ 경기도로 옮겨와야 할 양평 대흥리 태실의 태함

양평 대흥리 태실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 324-5번지에 있는데, 3개의 봉우리 중 가운데 봉우리가 태실이 있던 자리다. <조선의 태실(1999)>을 보면 1980년 이전에 태함 안에 있던 태항아리가 보였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도굴로 인해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이 유실된 상태다. 따라서 해당 태실의 흔적은 태함이 유일한 것이다. 그런데 해당 태실은 태주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데, 바로 진한용 원장(고려금석원)이 공개한 태봉 인근에 사는 마을 주민 이희원(1939년생, 양평면 백안리 거주) 씨의 증언과 일기장에 기록한 태지석의 명문이다.

해당 명문을 통해 양평 대흥리 태실의 태주는 홍치 3년인 1490년(성종 21) 2월 28일에 출생한 부수(富壽) 왕자의 태실인 것과 1494년(성종 25) 6월 10일에 태실을 조성한 것이 확인된다. 이 경우 해당 태실은 전성군(全城君) 혹은 왕실 족보에서 누락된 왕자의 태실로 추정된다. 한편 도굴 이후 남아 있던 태함은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난 2013년 국립춘천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야외에 전시 중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태실 석물이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춘천박물관에 있는 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향후 협의를 통해 해당 태함을 원 위치인 양평군이나 경기도 내 박물관으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

■ 광주로 되돌아와야 할 성종의 태실 석물

이러한 사례는 또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는 태전동(胎田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해당 지명은 성종의 태실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성종의 태실은 본래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265-1번지로, 지금도 태봉산이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 성종의 태실 흔적은 찾을 수가 없는데, 이유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왕직(李王職)에서는 태실의 훼손과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전국에 흩어져 있던 태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렇게 한 곳으로 모여 조성된 태실이 바로 서삼릉 태실인 것이다.

서삼릉으로 옮겨진 성종 태실
창경궁에 있는 성종 태실의 석물

이 과정에서 성종의 태실은 1928년에 이봉되어 임시로 경성 수창동 이왕직 봉상시 내 봉안실로 옮겨졌다가 최종적으로 1930년 4월 15일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또한 태실이 옮겨간 후 남아 있던 태실 석물은 이내 창경궁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유는 전문기사를 시켜 연구를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현재 태봉산에서 성종의 태실은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지명과 마을의 유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곳에 성종의 태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태봉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 문화재적 측면과 상징성의 측면에서 성종의 태실은 창경궁이 아닌 광주시 태전동으로 옮겨 복원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때 옮겨진 덕분에 성종 태실의 석물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또한 태봉산 역시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의지만 있다면 성종 태실의 온전한 복원이 가능하다. 특히 성종 태실은 경기도에서 확인되는 가봉태실(성종, 중종, 문조) 가운데 하나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서산 명종 태실(보물 제1976호)로, 여기에 태전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의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따라서 성종의 태실 석물은 창경궁이 아닌 광주시 태전동의 원 위치인 태봉산으로 옮겨 복원해야 한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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