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흔히 우리 역사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로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을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고조선 시기를 특징할 수 있는 유물로, 이 두 유물의 범위를 보면 고조선의 세력 범위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실제 고인돌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과 요동 일대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으며, 그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이 된다. 또한 주로 형태상의 차이를 보인다.
수원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금곡동 고인돌 |
오해하기 쉬운 것이 고인돌을 무조건 지배자의 무덤으로 인식한다는 점으로, 이런 인식보다는 고인돌이 당시의 장례 풍습이었고,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지배자의 무덤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조성방식에 따라 화장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다. 이러한 고인돌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당장 수원이나 화성, 오산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앞서 오산의 금암동 고인돌과 외삼미동 고인돌을 소개한 바 있으며, 오늘은 수원에 소재한 고인돌을 소개하고자 한다.
■ 고인돌에 담긴 역사의 흔적
우리나라에서 명확하게 고인돌을 볼 수 있는 곳은 강화도와 고창, 화순 등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비중이 높은 곳이다.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고인돌의 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수원의 경우 여기산의 선사 유적을 시작으로, 지금도 팔달산을 오르다 볼 수 있는 수원 팔달산 지석묘군(경기도 기념물 제125호), 금곡동과 이의동 등에서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즉 수원의 중심과 동과 서쪽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던 셈이다.
팔달산 지석묘군. 현재 4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
광교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이의동 고인돌 |
그런데 용어와 관련해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 ‘고인돌=지석묘’는 같은 말이다. 보통의 경우 고인돌로 부르지만, 안내문이나 학술서 등에서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또한 ‘고인돌=무덤’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의외로 제단으로 보는 견해와 주술적인 의미에서 신앙의 하나로 인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고인돌을 단순히 지배자의 무덤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강화도의 부근리 지석묘.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북방식 고인돌이다. |
고창 고인돌 유적지. 북방식 형태와는 차이를 보이며, 바둑판을 닮았다 해서 바둑판형 고인돌로 불린다. |
이러한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강화도 부근리 지석묘처럼 마치 탁자처럼 생겼다 해서 탁자형 고인돌로 부르고 있다. 남방식의 경우 화순이나 고창의 고인돌을 통해 알 수 있는데, 크게 큰 돌을 덮어둔 형상의 개석식과 함께 생김새가 바둑판을 닮았다 해서 바둑판형 고인돌로 부르고 있다. 위의 사진으로 보면 그 형태가 명확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고인돌의 형태를 통해 해당 집단의 출신지가 서로 달랐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인돌은 그저 단순한 무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 수원의 고인돌, 오래된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자!
이처럼 수원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청동기 시대에 이미 수원에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수원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수원의 고인돌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팔달산 지석묘군 ▲수원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금곡동 고인돌 ▲광교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이의동 고인돌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현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고인돌은 팔달산 지석묘군이 유일한데, 수원시립중앙도서관에서 팔달산 방향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현재 팔달산 지석묘군에서는 총 4기의 고인돌이 확인이 되었으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팔달산 지석묘군. 수원의 오래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한편 고인돌이 있는 곳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팔달산 채석장과 함께 수원 화성의 서남각루에 도착하게 된다. 수원의 고인돌 중 형태상 특징이 가장 완연한 고인돌이라면 단연 수원박물관의 야외에 전시 중인 금곡동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앞선 팔달산 지석묘군이나 이의동 고인돌과 달리 북방식의 형태가 완연하며, 그 규모 역시 가장 크다. 또한 이러한 고인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 성혈(性穴)로 불리는 홈 구멍이 나타나는데, 주술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원의 고인돌은 인근의 여기산 선사유적지와 함께 수원의 오래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