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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교육’과 ‘재인청’의 결합으로 비상하자

기사승인 2018.11.14  23: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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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작은 도시 오산은 그동안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과 정주성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자연환경, 역사적 유물, 뛰어난 인물, 산업단지 등 모든 면에서 이렇다 할 자산이 없는 오산시가 지역을 뛰어넘어 도약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3선의 곽상욱 오산시장은 취임 초부터 ‘교육도시 오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부단히 노력해 왔는데, 이제 어느 정도 교육도시로서의 기틀을 다지는 성과를 내게 되고 때론 타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온 마을의 자산을 총동원한다는 개념의 시민참여학교 등의 새로운 형식을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혁신교육지구 및 평생교육도시로서의 인프라 구축과 일정한 활동가 그룹 구축이 낳은 성과이다.

그러나 교육도시 오산의 미래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수원, 고양, 성남, 용인 등과 같은 주변 100만 대도시와 비교하면 풀뿌리 시민조직이 너무도 취약하고, 대학교 등의 학교인프라나 문화·관광·인문학·인물과 스토리 등의 자산에서 뒤져 있어 장래가 밝지 못하다. 교육은 교육 그자체로만 발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식과 민주주의 수준 같은 소프트 역량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또는 자연적 환경 등 다양한 부문에서의 인프라와 자산이 결합되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고 그 지역만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형식과 인프라를 갖춘 오산이 고민해야 할 다음 방향은 콘텐츠의 보강과 활동가 그룹의 양과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내용을 채우고 인재를 키워내면서 오산의 정체성을 세워 나갈 것인가.

독산성과 궐리사, 유엔초전비, 도립 물향기수목원, 오산 오색시장 등 외부에 내놓을만한 하드웨어가 그나마 몇 개 있지만 이것으로는 오산의 정체성을 만들고 상상력을 키워 비전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부터 오산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역사 문화적 유산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경기재인청의 존재이다.

재인청은 1920년대 일제에 의한 탄압으로 사라지기까지 130여 년 동안 민간 차원에서 조선의 문화예술을 이끌었던 무계들의 조직이었다. 당시 전문적인 문화예술은 궁중에서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해왔던 것 외에 민간 차원에서는 재인청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관리하면서 연희가 이루어졌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등에 존재했던 재인청 중에 경기도재인청이 가장 규모도 크고 문화 예술적 수준도 뛰어났다. 재인들은 궁중이나 지방관아의 중요한 행사, 중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또는 민간 차원의 연희 등에 참여했다.

당시 재인청의 세습무들은 예인으로서의 피를 물려받은 것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평생토록 문화예술을 교육받고 공연을 실제 담당함으로써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현대의 예총이나 민예총 소속의 문화예술가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들 조직보다 훨씬 자체 규율이 강했고, 교육에 있어 엄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날은 계급으로서의 신분차별이 철폐되고 문화예술가나 아이돌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세상이지만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재인들은 천민계급으로 온갖 설움을 당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예술 역량을 키우고 전수해 왔다.

놀라운 것은 재인청의 문화예술이 오늘날 한국 전통문화 공연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놀이, 도당굿, 시나위 공연, 판소리, 태평무, 승무, 도살풀이, 진쇠춤, 한량무, 신칼대신무, 줄타기, 땅재주 등 누구나 알만한 소리와 장단, 춤, 재주 등이 모두 재인청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전통문화 공연에 있어 국가로부터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것 중의 상당수는 재인청과 관련돼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선시대 최고 4만여명의 전문문화예술인 계원들이 소속돼 있던 경기재인청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도대방을 오산 부산동 출신의 이용우 가계가 3대에 걸쳐 했다는 점이다.

춤의 명수였던 부친 이종하와 조부 이규인, 증조부 이광달이 3대에 걸쳐 경기재인청의 도대방을 역임했으며, 이용우 자신은 한국 민속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의 대가이면서 인간문화재인 오수복을 가르쳤던 스승이었다. 인간문화재 지정 직전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하고 대신 제자가 인간문화재가 됐다. 이외에도 이용우의 작은 아버지 이종만은 경기재인청의 좌도 도산주를 역임했으니 11대에 걸친 이 무계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 문화발전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이용우 가계는 ‘경기도창제도청안’1책과 ‘경기재인청선생안’1책, ‘경기도창재청선생안’2책 등 경기재인청의 존재와 활동을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문서와 함께 창세서사시 <시루말>과 굿 의식의 초두에 불리며 무가사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지두서>(指頭書) 등 경기도당굿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용우 가계가 전통문화에 있어서 지위와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우리의 무속문화를 연구하는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경기재인청과 연관된 대표적인 인물들로 한성준, 이동안, 김숙자 등이 있다. 일반인들은 낯선 이름일 수 있겠지만 전통문화 공연을 하는 전문가나 관련 학계에서 이들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한성준은 당대 최고의 고수이자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로 불리며 승무, 검무, 한량무, 살풀이품, 사자춤 등 전국에 흩어져있던 전통춤, 특히 재인청 계열 춤을 정리해 무대에 올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인 승무의 인간문화재 한영숙,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인 태평무의 인간문화재 강선영을 제자로 키웠다.

화성 출신 이동안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인 발탈의 인간문화재로 살풀이, 태평무, 승무, 진쇠춤, 검무, 북춤, 소고춤, 학춤 등 거의 대부분의 민속춤을 섭렵한 당대 최고의 춤꾼이었다. 줄타기와 대금과 태평소 연주 등에도 능해 그의 재예 모두가 인간문화재 감이란 평을 들었다. 전국에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 이들은 현재 재인청과 이동안류 춤을 전승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안성 출신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의 인간문화재인 김숙자는 무계이자 재인청 출신 가계의 경기도 당굿권에서 태어나고 그 예술세계를 완성한 춤꾼이다. 신명의 이면에 한국 전통 춤의 다른 한축인 ‘한’과 ‘설움’을 표현한 우리 춤의 원형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이쯤 되면 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이 공연에 있어 한국 전통문화와 한류의 뿌리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의 본산과 함께 최고 지도자인 도대방이 모두 오산의 부산동에 있었다니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오산으로서는 가히 조상이 내린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산이 없어 고민이 많았던 오산은 이제 경제, 문화, 관광에 있어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상상력을 지니게 되었다. 문제는 지역의 지도자와 시민들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교육도시를 표방하는 오산시는 재인청과 도당굿의 핵심 내용, 즉 악기와 장단, 소리, 춤, 재주 등에 있어 무궁무진한 콘텐츠 발굴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산의 초·중·고와 대학교에서 학교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재인청류 예술을 익힐 수 있고, 전통문화 공연을 할 수 있으며, 연극, 뮤지컬로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전설과 신화, 또는 재인들의 희노애락을 바탕으로 재인청 관련 각종 희곡이나 시나리오,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매력적인 전통문화 그대로, 또는 국악의 현대화 및 다양한 장르와의 퓨전으로 새로운 창작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시 차원에서 재인청 학교와 상설공연장을 만들어 오산을 문화와 교육의 진정한 메카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모든 성과를 수렴하고 또한 새로운 발전의 자극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산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축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재인청과 도당굿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주도하는 대동의 신명나는 축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문화, 교육, 관광, 경제, 사회적으로 도약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한껏 높일 수 있는 비전을 창출하는 가능성을 열게 될 것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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