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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은 오산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기사승인 2018.10.11  13: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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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오산 역사에 이렇듯 빛나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있었던 적이 없었고, 그럼에도 시(市)와 지역정치인들이 이를 보존 및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재함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바로 조선시대 4만여명의 전문적인 예인 회원을 거느리며 대중문화의 교육 및 확산을 담당했던 경기재인청과 ‘중요 무형문화재 제98호’이자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 역할을 해왔던 경기도당굿에 대한 이야기다.

뜻있는 민속학자나 전통문화예술가 사이에 경기재인청이 오산 부산동에 존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수원에서 재인청의 의미를 높게 평가해 몇 차례에 걸쳐 학술대회를 열고 화성행궁의 화령전을 중심으로 재인청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은 재인청이 과거 행정구역상 수원시 성호면 부산리 웃말(오산시 부산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에는 경기도당굿의 대가 이용우 가계에서 증조부 이광달, 조부 이규인, 부친 이종하 3대에 걸쳐 재인청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도대방이 배출됐으며, 이용우의 작은 아버지 이종만은 경기재인청의 좌도 도산주를 역임한 데서 추측할 수 있다. 이용우 가계에서 보유한 ‘경기도 창제도청안’1책과 ‘경기도 재인청 선생안’1책, ‘경기도 창재청’2책은 경기재인청의 존재와 활동을 증명해 주는 문서로서, 이들이 가장 중요한 문서를 보유했다는 것은 이들이 살고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부산동에 경기재인청 본산이 있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정황이다. 물론 당시 이들의 신분이 천민계급이었고, 따라서 본산이라고 해봐야 현대와 같은 큰 건물을 상상할 수는 없다. 일본학자 아키바 다카시와 아카마쓰 지조가 공저한 ‘조선 무속의 연구’는 경기재인청의 존재를 드러냈던 가장 권위 있는 책인데, 일제 당시 이들이 이용우 가계를 조사할 때 세습 11대에 이르는 무가(巫家)로서 무녀 5명과 재인(才人)인 6명이 함께 살며 세 집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건 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의 고장 오산시에서 두 사안이 가진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 너무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부산동에 남아있는 재인청과 이용우 가계의 흔적에 대한 보존 노력도 없고, 오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인 경기도당굿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수원의 경우 고 심재덕 시장의 높은 식견과 의지로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복원이 시작됐고, 마침내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 것과 비교된다. 염태영 시장에 이르러 화성과 행궁 주변 복원과 새로운 단장, 능행차 및 야조 공연, 진찬연 등 문화유산에 걸맞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이제 수원은 문화관광도시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갖고 많은 예산을 쏟아왔던 수원은 앞으로 정조대왕의 스토리와 수원화성, 행궁의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여기에 인문학과 지역 문화 역량이 결합되면서 문화관광도시로 본격 도약할 전망이다. 수원역 중심으로 롯데와 애경 대자본이 거대 상권을 형성하며 갈 길을 잃었던 남문과 북문 사이의 전통상권은 이제 수원화성과 행궁 복원 및 문화콘텐츠의 결합, 다양한 상점의 입점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며 부활하고 있다.

오산에 있어 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의 존재는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축복이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산은 문화와 교육, 경제, 역사, 시민의 자긍심 등 다방면에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게 됐다. 경기재인청의 작은 분파가 떨어져 나가 형성된 남사당패로 오늘날 안성이 누리는 효과를 보면 알 일이다. 문제는 이 엄청나고 중요한 가치에 대한 오산의 지도자와 시민들의 개방적이고 깨어있는 의식이고, 잠재력을 현실화시켜낼 수 있는 의지와 실력과 노력이다.

재인청과 도당굿,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면 무계에 대한 편견부터 걷어내야

경기남부의 대표적인 세습무인 이용우 가계가 도대방 및 주요 직책을 맡으며 재인청을 주도적으로 이끈 데에서 알 수 있듯, 경기재인청은 무계가 주도한 조직이다. 이들에 의해 경기도당굿이 진행됐고, 각종 공연들이 연희됐다. 이용우의 부(父)인 이종하는 당시 아들을 데리고 전국을 유랑하며 창극단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이때 송만갑과 이동백 등 당대 명창 등이 함께 다녔다고 하니 이들 가계의 지위와 권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재인청과 도당굿, 전통 민속문화를 이해하려면 재인청을 주도했던 무계에 대한 편견부터 걷어내야 한다.

3.1운동 이후 한민족의 문화가 확산되고 대중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 재인청이 문을 닫고, 의료가 발달하고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또는 유교나 기독교 등 여러 종교집단으로부터 굿과 무당, 무속은 미신이라고 쉽게 매도당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비과학적인 무속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무당이나 신(神)이 아니다. 재인청과 경기도당굿에서 재인들이 행한 춤이나 창과 소리, 악기와 연주, 재주와 놀이 등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이 관심사이다. 전통문화 그대로 계승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국악 현대화 및 전통악기와 현대 한류 춤, 소리와 비보이, 사물과 오케스트라 등 무궁무진한 창조와 변형, 결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설과 신화, 또는 재인들의 희노애락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연극과 영화화 및 인형과 캐리처 기념품 사업화, 먹거리 개발 등 다방면으로 콘텐츠를 모색할 수 있다.

한편, 도당굿은 마을의 흉과 액을 제거하고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한강이남 경기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식이다. 경기도당굿에서 굿을 주도하고 연희를 담당했던 주역은 화랭이인데, 대표적으로 영종 세습무가 출신의 조한춘과 오산의 이용우가 있다.

재인청과 도당굿이 대단한 것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판소리나 피리, 해금, 대금, 장고, 북, 꽹가리 등의 연주, 도살풀이, 태평무, 승무, 터벌림, 진쇠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군웅·쌍군웅춤, 검무 등의 춤과 줄타기, 버나돌리기, 솟대타기, 발탈, 무동놀이, 산대놀이, 땅재주 등의 전통놀이 대부분이 이에 영향 받았다는 점이다. 가히 전통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고, 이와 연관된 오산은 전통문화이자 오늘날 대중문화의 뿌리 역할을 하는 지역인 셈이다. 객관적인 사실과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있으나 정작 그 주인공인 오산민들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전 끝난 6.13지방선거에서도 재인청과 도당굿 등과 관련한 공약이나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산시는 먼저 이용우와 경기도당굿에 대한 의미를 시 차원에서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왜 평택이 지영희를 국악현대화의 아버지이자 평택의 영웅으로 위상을 재정립하려 하는지 눈여겨보기 바란다. 또한 부산동을 재인마을로 지정하고 경기재인청과 경기도당굿을 보존, 육성하기 위한 조례제정 등을 서둘러야 한다. 예산낭비·정체성 없는 불필요한 축제를 줄이고, 재인청을 중심으로 한 창조적인 축제를 기획하고, 장기적인 계획 하에 학술대회와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 상설공연장 건립 등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문화가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는 현실에서 전통문화와 한류의 뿌리 역할을 한 무계에 대한 편견과 탄압을 걷어내고 재인청과 도당굿 관계자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수원은 문화유산 관련해 정조가 왕이어서 문화적 자긍심이 대단하고, 오산은 천문계급 출신이어서 자신의 역사와 문화적 자긍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후손들이 자신의 선조가 한국의 문화발전에 미친 지대한 역할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는 건 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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