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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

기사승인 2009.04.28  1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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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별 편견 속에 권리 찾고자 투쟁 해 온 배기철 회장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국제적으로 다문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하철을 타도 어디서든지 쉽게 외국인을 볼 수 있다. 도시지역도 그렇지만 특히 농어촌 지역에는 국제결혼을 한 다문화 가정이 흔하다.

‘다문화가족지원법안’까지 통과됐을 정도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이에 반해 ‘혼혈인’에 대해서는 차별과 편견이 어느 나라보다도 매우 심하기만 하다.

“혼혈인 중에서도 특히 6․25 전란 때 미군과 연합군의 여성 강제추행으로 태어난 이들이 많아요. 태어날 때부터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졌어도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리 조차 우리는 적용받지도 못하다니 웬 말입니까.”



국제가족한국총연합 배기철 회장은 혼혈인에 대한 이 같은 대한민국의 대우에 먼저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도 물론 혼혈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김해에 있는 장씨 가문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아 잘 살고 있었다. 1956년 장에 쌀을 팔러 나갔다가 미군기지 근처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유엔군으로 부터 강간을 당해 그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시댁과 친정에서 모두 쫓겨나야만 했다.

“이 같은 피해로 태어난 혼혈인이 전국적으로 1500명에 이릅니다. 전란의 피해 여성과 그 자녀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하고 ‘기지촌 여성과 자녀’로 비하돼 차별과 편견의 대우 속에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죠.”

이같이 말하는 배 회장의 말과 표정을 통해 혼혈인들이 받아 온 서러움이 어땠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1971년 친목단체인 혼혈인협회를 구성해 그 동안 단체로 등록하려 했지만 국가의 반대가 있었다. 심지어는 혼혈이란 명칭까지 쓰지 못하게 했다. 이는 단일민족과 순혈민족의 자부심이 워낙 강한 국가가 이들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발 물러나 국제가족이란 명칭을 대신해 2004년 설립됐다. 국제가족이라 하면 혼혈인을 포함해 국제결혼 당사자와 가족, 귀국 해외동포, 귀화 외국인, 국내거주 외국인과 가족이 포함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6․25전란에 태어난 혼혈인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공평한 환경에서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터전 마련을 비롯해 전란의 피해여성 가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지원 대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해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문화 가족을 위해서도 일하지만 배 회장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혼혈인의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설명했다.

그가 이 일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 준 것이 있다. 바로 그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아내 안성자씨다. 까만 피부에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진 그의 아내와는 1998년 혼혈인협회 창단 준비를 하던 중 만나게 됐다.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언제나 뜻을 같이 해 왔고, 단체를 설립하게 된 것도 아내의 역할이 크다 하여 공을 대신 돌렸다.



배 회장은 그 동안 정부로부터 수차례 투쟁해 온 결과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보여 조금은 빛을 보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해 제1회 세계인의 날에 한승수 국무총리로부터 외국인 사회통합 활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가 이제는 관심만 갖는 데 그치지 말고 책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현진 기자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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